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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산 자락에 펼쳐진 한민족 웅비의 터전

작성일 : 2005.06.12 / 개설자 : admin

백두산을 향하여 96년 여름의 한겨레신문사 주최 통일 염원 백두산 순례는 나에겐 단순한 관광 여행만은 아니었다는 점에서 출발부터 좀 특별한 의미를 가졌었다. 그것은 아마도 우리 민족의 역사적 삶 속에 우뚝 솟아 있는 ‘백두산’의 엄청난 상징성 때문일 것이다. 백두산은 우리 배달민족의 發祥地로서, 민족의 생존을 지켜온 존재적 거점으로서 반 만 년 역사 동안 줄곧 우리 민족의 정신적 지주가 되어 왔다. 그것은 21세기를 향한 이 시점에서도 여전히 우리 민족의 의속 속에 엄청난 무게로 자리잡고 있다. 특히 남북이 갈라진 채 민족 분단의 고통 속에서 신음하고 있는 이 시점에서 백두산의 의미는 더욱 각별한 의미로 우리에게 다가서고 있다. 그것은 국토와 민족 분단의 비극을 잉태한 이념의 벽을 넘어 민족의 사상과 정신을 하나로 아우럴 수 있는 구심점으로서, 곧 이 시대 민족사의 최대의 비극인 분단의 극복을 해결할 수 있는 통일의 상징으로서 작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그 동안 백두산은 남북의 분단으로 가까이할 수조차 없었던 남쪽의 우리들에겐 항상 신비의 대상이자 그리움과 동경의 대상이었으며, 더 나아가 역사적 격동기에서는 민족적 시련을 이겨낼 수 있게 한 민족적 삶의 존재적 거점이자 민족의 수호신이기도 했다. 이러한 백두산에 대한 우리 민족의 畏敬과 선망은 이번 백두산 탐방에서도 그대로 확인이 되었다. 중국행 비행기 뿐만 아니라 백두산을 향하는 길목마다 온통 한국사람들로 들끓고 있었다. 6-7시간의 험난한 비포장 도로를, 그것도 남의 나라 땅이라는 모든 불편을 기꺼이 감수하면서 달려와서는 백두산 천지의 장엄한 광경 앞에 ‘만세’를 외쳐대는 한국인들의 이러한 백두산에 대한 열기는 아마도 한국인이 아니라면 이해하기 어려울지도 모르겠다. 이것은 바로 백두산 탐방의 의미가 단순한 관광에 그치지 않는다는 것을 단적으로 말해 주는 예가 아니겠는가. 소설 ｢아리랑｣을 읽고 떠난 여행길 그래서 나도 이번 백두산 탐방을 앞두고 나름대로 마음의 자세를 새롭게 가다듬기도 했다. 그 중의 하나가 바로 역사적 시련기에서의 민족적 삶에 대한 이해를 넓히기 위해 그 동안에 미뤄 왔던 조정래의 소설 ｢아리랑｣을 읽었다. 소설 속의 시공 속에서 일제시대의 우리 민족의 끈질긴 생명력과 처절한 삶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고 있었다. 수많은 인물들이 등장하고 사라지면서 한반도, 만주, 연해주, 중앙 아시아, 일본, 하와이, 남방군도, 인도지나 반도 등 일제시대의 우리 민족의 발자취가 스친 곳은 빠짐없이 소설의 무대로 등장하고 있었다. 장대한 서사적 구조 속에 지난 세월 동안 잊혀진 민족의 처절한 삶의 모습들이 구체적인 시간과 공간 속에 생생하게 재현되고 있었다. 역사적 격동기를 소용돌이치며 사라져간 민족의 삶의 모습들이 총체적으로 형상화되고 있었다. 그러면서 그 시대의 사회 · 역사적 현실이 눈앞에 선하게 떠오르고, 그것은 다시 진한 감동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참으로 ‘아리랑’은 우리 한민족의 내부에 줄기차게 흐르고 있는 끈질긴 생명력과 피맺힌 恨 그 자체였다. 며칠 동안 나는 모든 것을 팽개친 채 소설 속에 몰입할 수밖에 없었다. 이 속에서 특히 만주는 삶의 터전을 빼앗긴 채 뿌리뽑힌 민중들의 눈물어린 고통스러운 삶의 터전으로서, 조국을 되찾기 위한 투사들의 피어린 투쟁의 장소로서 소설의 중요한 공간적 배경이 되고 있었다. 이런 점에서 소설 ｢아리랑｣은 이번 백두산 탐방길을 더욱 의미 깊게 했으며, 이 덕분에 나는 꽉 짜여진 일정 속의 여행길임에도 불구하고 연변의 풍물과 우리 조선족의 삶을 좀더 색다른 시각으로 접근할 수 있었다. 연길을 떠나 백두산으로 향하는 길가에 지금은 아무렇게나 방치된 쓰러져가는 움집들이 우선 예사롭게 보이지 않았다. 겨우 한두 사람이 기거할 수 있을 정도의 토굴과 같은 움집들의 흙담은 무너지고, 지붕과 서까래도 썪어 아무렇게나 나뒹굴고 있는 을씨년스러운 움집들의 모습들은 바로 지난 세월 삶의 터전을 빼앗기고 만주의 허허들판에서 생존을 위해 발버둥쳤던 조선 민중들의 신산한 삶의 흔적을 보여주는 것 같아 마음 한 구석이 찡하게 울려왔다. 그리고 만주의 드넓은 논밭을 바라보면서, 특히 가파른 야산의 비탈에 일구어진 밭들은 지난 시절 조선 농민들의 처절한 생존을 위한 투쟁의 흔적을 말해주는 듯했다. 또한 논농사가 없었던 척박한 만주의 땅에서 부지런한 조선 농민들의 피땀으로 이루어진 논들이 드넓게 펼쳐져 있고, 거기에는 한여름 뙤약볕 아래 벼들이 푸르게 넘실거리는 것을 보면서 지금도 우리 한민족의 억척스러운 끈질긴 생명력이 살아 숨쉬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저 끈질긴 민중의 생명력이 눈보라 몰아치던 남의 땅 만주의 벌판에서 온갖 시련 속의 모진 세월을 견디며 우리의 언어와 문화를 고스란히 지켜온 원동력이 아니겠는가. 조선 투사들의 피의 대가, 연변 자치주 6개의 도시로 이루어져 있다는 연변 자치주 안에는 길거리의 모든 간판과 표지판들이 모두 한글과 한자를 병기하였으되, 항상 한글이 먼저고 그 밑에 한자가 씌어져 있었으며, 농촌에서의 조선족들의 집들은 벽을 하얗게 칠해 놓음으로써 멀리서도 중국 漢族의 집들과는 한눈에 확연히 구별이 되었다. 그 속에는 남의 땅에서도 민족의 얼을 자랑스럽게 지켜온 백의민족의 긍지와 자부심이 그대로 묻어나고 있었다. 이것은 청나라의 통치자였던 만주족이 지금은 그들의 언어와 문화를 잃어버린 채 중국문화에 동화되어 이젠 그 흔적조차 찾기 어려운 것과 비교해 볼 때 실로 경이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여기에는 나라를 잃은 그 시대에 조국의 독립을 위해 이역땅에서 온몸으로 투쟁했던 독립투사들의 불굴의 고귀한 민족정신이 밑바닥에 흐르고 있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만주의 우리 민족들이 중국내의 55개의 소수 민족의 하나로서 연변 자치주를 이룰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수많은 투사들의 피의 대가였음을 나는 이번 여행길을 통해 새삼 확인할 수 있었다. 중국 공산당이 조선족에게 자치를 허용한 것도 사실은 수많은 조선 청년 투사들이 중국 혁명을 위해 기여한 공로 때문이었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만주의 산야에서 피흘리며 산화해간 이름없는 수많은 투사들의 희생이 오늘의 연변 자치주의 밑거름이 되었던 것이다. 우리는 먼저 관광의 재미와 즐거움에 젖기 전에 이들의 넋 앞에 고개를 숙여야 할 것이다. 그리고 온갖 생존의 위협 속에서도 이들의 투쟁의 기반이 되어준 수많은 조선 민중들에게도. 그 조선 민중들은 조국이 해방된 후에도 조국의 고향땅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이국땅에 주저앉아야 했으니, 이들의 삶은 얼마나 눈물겹고 한스러웠겠는가. 이렇게 모진 세월을 견디면서 우리의 언어와 문화를 자랑스럽게 그대로 지켜온 연변의 우리 민족에게 나는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오는 존경과 감사를 표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들이 있었기에 지금 우리는 남의 땅에서 언어 소통의 지장도 전혀 느끼지 않고 아무런 불편없이 자유롭게 다닐 수 있지 않은가. 자본주의 속물근성 물들지 않게 그러면서도 현재의 이들의 검게 그을린 얼굴과 허름한 옷차림 등을 보면서 이들의 고단한 삶의 조각들을 대면하게 될 때 마음 한 구석이 편치 못하기도 했다. 그러나 주어진 여건 속에서나마 좀더 잘 살아보겠다는 이들의 의지는 여기저기서 포착되고 있었다. 길거리에서, 시장의 한 모퉁이에서, 시골의 먼지 날리는 도로변에서 보잘 것 없는 물건이나마 펼쳐놓고 여행객들을 맞이하고 있는 이들에게서 미래에 대한 희망과 함께 생생한 삶의 활기를 느낄 수 있었다. 지금의 수많은 한국 여행객들의 발길이 이들의 새로운 삶에 조그만 보탬이나마 될 수 있다면 오늘날 우리들이 지고 있는 과거의 빚으로부터의 부담감이 다소나마 가벼워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홀로 해 보았다. 그러나 비록 이들이 경제적으로 좀 어렵게 산다 하더라도 우리는 결코 어줍잖은 우월감이나 값싼 동정심으로 대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이 점에서 일부 여행객들의 천박한 자본주의적 속물근성에서 비롯된 지나친 과시적 행동은 크게 경계하고 자제해야 할 점이 아닐 수 없다. 한국 여행객들의 무분별한 황금 만능주의적인 자기과시적 행동들이 행여 이들에게 심적 상처를 주지는 않을까 염려된다. 이들이 돈의 위력 앞에 주눅들거나 왜곡된 자본주의에 대한 맹목적 열정들은 장래를 위해서도 결코 바람직하지 않을 것이다. 이들이 비록 경제적으로 어렵다 할지라도 지금까지 유지해온 한민족으로서의 문화적 주체성과 자긍심을 잃게 해서는 안 된다. 이미 이국땅이 되어버린 이 땅에서 지금까지 우리의 언어와 문화를 지켜온 이들에게 우리는 진심으로 존경과 감사의 마음으로 도울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할 것이다. 섣부른 시혜적인 경제적 도움보다는 좀더 성숙한 자세로 우리의 진심어린 관심과 애정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21세기를 향한 우리 한민족의 웅비를 위해서 보다 차원 높은 안목으로 접근해야 할 것이다. 우리 민족이 21세기에 세계사의 주역으로 발돋음하기 위해서는 백두산 자락에 펼쳐진 연변 지역은 대륙 진출을 위한 관문이자 거점으로서 세계로의 웅비를 위한 발판이 되어야 할 것이라는 점에서 우리는 남다른 관심과 애정을 가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21세기를 향한 한민족 웅비의 터전 이런 점에서 한민족의 장래에 대한 어느 예언은 우리에게 의미심장하다 할 것이다. 천기를 누설한다는 그 역술가에 의하면, “언젠가 남북통일이 이루어지고, 중국이 여러 나라 나누어질 때 연변의 조선 자치구는 하나의 독립된 자치국이 되고, 그 후 하나가 된 통일 한국은 자치국이 된 연변 한국 및 몽고국과 결합하여 韓聯邦을 결성하게 된다.”라는 것이다. 이것은 단순한 흥미거리 정도의 예언이라기보다는 우리 민족이 나아가야 할 웅대한 미래의 비전을 제시한 것이 아니겠는가? 이것은 민족의 영산 백두산을 중심으로 뭉쳐진 우리 한민족이 세계로 웅비하여 세계사의 주역이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이룩해야 할 민족사의 목표라고 할수 있을 것이다. 이와 더불어 백두산 아래 드넓게 펼쳐진 광활한 만주의 들판은 옛 선조들이 말 달리며 대륙을 주름잡던 우리 민족의 활동 무대였고, 이것은 바로 고조선과 고구려, 발해의 옛땅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이 예언은 우리에겐 남다른 특별한 의미를 지니게 된다. 이에 대한 가능성은 바로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의 의지와 노력에 달려 있다 할 것이다. 먼저는 분단된 남북을 통일하는 것이고, 그 다음엔 통일 후 흩어진 민족적 에너지를 하나로 모아 대륙을 향해야 할 것인데, 이 때 오늘의 연변 지역은 바로 이를 실현하기 위한 발판이자 거점이 될 것이라는 점에서 우리에겐 각별한 의미를 지니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보다 넓은 시야와 높은 안목으로 오늘의 연변 자치주의 조선족들에게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그래서 백두산 아래에 펼쳐진 그 곳을 향한 수많은 한국인들의 발걸음이 단순한 관광 여행만으로 그쳐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안한상)

jongye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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